단원 김홍도 생황 부는 소년 마네 피리 부는 소년

김홍도(1745~1806 이후)의 <생황 부는 소년>을 보면 마네(1832~1883)의 1866년작 <피리 부는 소년>이 자동으로 떠오른다. 같이 비교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비슷한 제목과 그림이라 이것저것 생각해보게 되는데 색채감도 그렇고 솔직히 우리 그림이 ‘없다’고 보인다.그러나 생황부능 소년에 대한 송철주 선생의 해석을 접하자 달라 보였다. 요약하면 이렇다. 대각선에서 자라는 소나무와 비스듬히 앉아 있는 소년을 보라. 선율이 펼쳐지는 동적인 느낌이 들지 않나? 한마디로 생황의 목소리를 형상화한 것이다.우리 그림을 이해하려면 여백의 아름다움은 물론 나무와 바위 등 배경의 역할 등 숨은 의미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

김홍도, 『생황부는 소년』, 18세기, 종이에 담채, 109x55cm, 고려대학교 박물관

에두아르 마네, 1866년, 161x97cm, 캔버스에 유채, 파리 오르세 미술관

어린 소년병을 대상으로 그린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도 약간 꼬인 몸이 선율을 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김홍도, 『생황부는 소년』, 18세기, 종이에 담채, 109x55cm, 고려대학교 박물관

“송·쵸루쥬의 음악이 있는 옛날 그림의 강의”이라는 부제가 붙은<신>이라는 책에 송·쵸루쥬 선생님의 해설이 실렸다.일부 발췌해서 소개한다.한 소년이 머리에 상투를 두르고 거위의 날개로 만든 옷을 입고 맨발로 앉아 센 팬이라는 악기를 불고 있습니다.센다이 팬들의 목소리를 바로 천재적인 감각으로 시각화하는 데 성공한 명작입니다.여기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나는 보는 사람의 귀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이 그림들 속에서 그 소년이 불전돌 팬의 소리를 알아낼 것.그것이 “귀”입니다.그것은 귀 명창입니다.그림을 잘 보면 다소 기운 듯한 비탈 소나무가 피었네요.소년도 오른쪽으로 비스듬하게 앉아 있습니다.일직선이 아니라 약간 경사입니다.선율이 퍼지는 동적인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구도를 일부러 이렇게 했습니다.다음에 소나무 기둥을 보세요.소나무 껍질이 이처럼 스프링처럼 오르고 있습니다.저는 이것이 현대 음악의 음표처럼 보입니다.활 모양 뿔 이빨 날개가 아니라 서양의 음표처럼 보입니다.다음에 선율이 위에 올라가서 소나무 가지처럼 이렇게 뻗어 나가야 하는데, 잡아당기는 소리 하나 주고 가지 하나가 거꾸로 돌아 코드를 울렸습니다.이것이 리듬과 멜로디입니다.그럼, 이제도 귀에 센다이 팬들의 목소리가 안 들리나요?오른쪽 위에 당나라의 시인·라업(라鄴의 시”제생 문제 생황, 센다이 팬들에게 보내”의 한 구절을 썼습니다.”봉황이 날개를 펼친 것처럼 대죽 머리는 길고 짧지만 용의 울음 소리보다 처절한 소리가 월당에 확산되네” 이렇게 그림에 음악적 감각을 살릴 수 있는 화가가 단원 김·폰도 했다.천재적 소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실제로 단원들은 음악적 소질이 있었습니다.피리, 대금, 단소, 거문고의 대가였습니다.정말 자유롭게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이더군요.

송철주 선생의 해설이 지나친 상상과 비약이라고 꿈보다 해몽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소나무를 저렇게 표현하지 않았을 것이다.한 작품을 놓고 다양하게 이야기를 끄집어내 풀어내는 것도 작품 감상의 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한국의 옛 미술을 이해하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기도 하다.뛰어난 해석과 문체, 해박한 식견과 부드러운 입담으로 한국의 옛 그림을 소개하는 송철주 작가는 미술평론가이자 학고재 주간이다.